이야기(거니야)

한번만 생각하고...

거니빵 2016. 10. 28. 16:18

한적한 오후의 시간은 온몸을 나른하게 했다.
그래도 저녁에 먹을 찌개 육수는 만들어 놓아야 했다.
육수거리와 물을 넣은 냄비를 약한 불 위에 얹어놓고 잠시 소파에 앉았다.

깜빡 졸았나 보다.
몽롱한 정신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타는 냄새.
잠깐 졸았는줄 알았는데...육수가 쫄다가 다 타버렸나 보다.
부엌의 뿌연 연기 속에 벌겋게 과열된 냄비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불을 빨리 꺼야겠다는 생각뿐.
정신없이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 바가지에 물을 제대로 담을새도 없이 냄비에 끼얹었다.
그리곤 "펑"

이후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귀에 들리는 소리로 지금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곤 다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것일까?
온몸이 너무 따갑고, 무언가에 덮여있는 듯 부자유스러웠다.
아니 솔직히 죽을 것 같이 아팠다.
신음...아니 비명이 절로 나왔다.
절규하며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고 물었다.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한다.
죽을 것 같았고...죽을 힘을 다해 견뎠다.

마취제의 힘인가? 아님 진통제의 힘인가?
잠시 고통이 사라진 사이...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궈진 냄비에 물부터 붓기 전에 한번만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후회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곤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아니 약의 힘으로 고통을 잠시 모면하였다.


※ 지인의 경험담에 약간 살을 더 붙였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별것 아닌 것같지만 정말 지혜로운 생각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급해도 잠시라도 한번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혜...오늘따라 이런 슬기로움이 필요하단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