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중 부근에서 시작하여 턱으로, 다시 목에까지 내려왔다가는 구렛나루 밑으로 날면도기가 움직인다.
한번으로는 좀 아쉬워서 다시 한번 내 날면도기는 좀전의 길을 똑같이 반복해서 움직인다.
좀처럼 순서가 바뀌지 않는다.
몇번 순서를 바꾸보려 했는데...그때마다 피를 보았고, 그 후로는 용기를 안 내기로 했다.
날면도기가 지나간 자리를 손바닥으로 스윽 훓어보니...매끈하고 부드러운 것이 만족스럽다.
면도를 마쳤으니 날면도기를 흐르는 물로 세척한다.
"오늘도 기분좋은 하루~!"라고 주문을 외우며 거울을 보고 씽긋 웃어본다.
이제 애프터쉐이브스킨을 바르면 상큼한 면도의식이 끝난다.
스킨병을 집어드려는데...문득 예전에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올X 스파X스 스킨병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예전 영상들이 눈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학교에 다니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뽀얀 병을 보고 우유병인가 싶어 뚜껑을 열었다가, 그 특유의 강렬한 향에 뒤로 자빠졌던 기억.
아버지가 바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나도 해달라고 졸라 결국엔 소원을 성취하는데...어린 피부에는 화끈거림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추억.
그리고 어느날부턴가 뽀얀병 대신 한글이 써있는 유리병으로 교체되어 아쉬워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얘기를 하셔서 구입했었는데...결국엔 많이 사용도 못하시고 떠나셨다.
병을 손에 쥐고서 뚜껑을 열려는데 망설여진다.
그럴리는 없겠지만...향이 사라졌을까 두려웠다.
그 향이 사라졌으면...내 기억속의 아버지의 향도 잊어버릴까봐서.
조용히 병을 내려놓는다.
그리운 기억을 오늘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스킨을 바르면서...생각해 본다.
지금의 나를 기억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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