審(審覺解)

소나기를 보다가...생각이 멀리 갔다.

거니빵 2015. 8. 9. 01:53

차를 몰고 가는데, 소나기가 엄청 시원~하게 내렸다.

와이퍼를 신나게 놀려도 소나기의 기세를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선루프를 통해 본 빗줄기는 경쾌하다 못해 자기 흥을 못이기는 꾸러기의 몸짓같았다.

 

신호에 걸려 차를 정차시키고, 소나기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시원한 소나기를 맨몸으로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기를 맞으면, 내 몸 위에서 나를 짓누르는 근심, 걱정이 쓸려내려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소나기 구름을 보고 내가 먼저 가보겠노라고 뛰던.

이내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낄낄대던 어린시절.

 

그때 나와 함께 소나기 속을 뛰어다녔던 친구는 어찌 되었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가 잘 지내기를 빌어본다.

민소매 옷을 참 싫어했었는데, 소나기 속을 뛰어다닌 후로 즐겨 입었던 생각이 난다.

 

한때는 민소매 옷을 입히면 옥상에 올라가서 몸서리치게 민소매 옷을 원망하며 있었었다.

그러다 민소매 옷에 마음을 연 이후로는 나름 옷을 과감하게 입었었다.

이십대 중후반 때까지는 옷도 직접 구매하며 입을 정도로 패션주관을 가지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소나기를 보며 시작된 생각이 어느새 전혀 예상 못한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이 없다 생각을 하다가 '이래서 사람인거야'라며 나를 위로한다.

'그래. 나는 극히 평범해.' 그리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