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거니야)

받을게 있을때만 흠~...ㅉㅉㅉ

거니빵 2016. 4. 11. 21:12

여느 마을처럼 조용한 전원동네가 있었다. 마을주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였다. 대부분의 집은 노부부들만 살고 있었고, 유독 한집만 자녀내외와 함께 사는 집이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마을에 갑자기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자녀내외와 같이 살던 부부가 이웃도시로 친척결혼식에 참석하러 갔었는데...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부부가 한날한시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급하게 외지의 자녀들과 친척 그리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여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모두가 슬픔 속에서 부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는 이내 자신들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말쑥한 정장의 한남자가 그들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그는 다름아닌 부부의 유언장을 공증하고 보관해오던 변호사였다. 자녀들과 일가친척들을 모아놓고, 유언장의 내용을 공개하는데...모두가 깜짝 놀랐다. 놀라게 된 첫번째 이유는 생각보다 부부의 재산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내용이었는데...충격적인 내용은 이랬다. "재산의 절반은 공익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세명의 자녀에게 나누어주되 그 배분은 친척 어른들의 의견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친척들은 떠난 부부의 뜻에 깊은 감명을 받은듯...모두 다시 그들을 애도하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반면 자녀들의 표정에서는 당황과 당혹 그리고 서운함이 비쳐졌다. 부모의 재산이 그렇게 많았다는데 당황스럽고, 재산분할의 방식을 친척들이지만 다른사람들이 한다는데에 당혹스럽고, 왜 굳이 재산의 절반은 사회에 환원했는지 서운해들 했다. 형제 아니랄까봐 셋 모두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그럼에도 이내 표정을 고치고서는 친척들에게 빨리 결정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친척들은 세자녀들의 변을 듣고 결정키로 하였다.

첫째부터 시작했는데...첫째의 이름은 '다중'이고, 체격조건은 덩치는 큰 편인데 그에 반해 머리는 유독 작아보였고, 이마와 미간이 좁으면서 볼은 불룩한게 마치 양쪽으로 사탕을 물고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옷이나 장신구는 명품처럼 보였지만, 폼은 나질 않았다. 자신의 변을 시작하는데...버럭 성질부터 내는게 아닌가. "부모님 뿐아니라 조상 제상을 지낼 의무가 있는 제가 재산의 상당부분을 받아야하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왜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사회 환원은 무슨 환원이냐구요. 절대 인정 못해요. 배 째라구요" 계속 식씩대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잠자코 듣고 있던 친척들이 "싸가지없이 무슨 말버릇이야!""버르장머리없는 X!""뭐하는 짓거리야!"등등 질타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더니 "흑흑흑...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버릇없게 안 굴테니까, 저한테 대부분의 유산을 주세요. 흑" 이야기를 듣던 모든 이들은 어이 없고, 기가 찰 뿐이었다.

둘째의 이름은 '전가'였다. 체격은 첫째인 '다중'이와는 달리 삐적마른데다가 얼굴도 길쭉했다. 그런데 첫째와 마찬가지로 이마와 미간은 좁았고, 다른 곳에는 살이 별로 없는데 유독 볼은 첫째와 같이 불룩해보였다.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데, 옷은 수수하게 입은 것이 덜 날카로워 보이게 해주었다. 첫째의 얘기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낚아채듯 자신의 변을 시작했다. "나는 정말 억울해요. 어릴때부터 가운데 끼여서 얼마나 차별을 받았는지 몰라요. 어릴땐 첫째한테 다 해주고, 전 첫째가 쓰던거나 물려받았지 온전히 제것이 한번도 없었어요. 셋째가 태어나고서는 좀 괜찮아지려나 했는데...더 차별받았어요. 셋째는 제것을 물려받은게 아니라 다시 다 새것만 썼다구요. 평생 전 양보만 하고 살았어요. 맏이는 맏이라서 대접받고, 막내는 막내라고 귀여움 독차지하고. 그러니 지금까지 손해본거 다 보상받아야겠어요. 위아래 둘 때문에 차별받은거까지 다 배상받아야하니 유산의 대부분은 제가 받아야한다구요. 이해들 하시죠. 그리고 저도 환원에는 반댑니다" 친척들은 이야기를들으면서 착잡했다. 둘째가 알게모르게 혜택받은게 꽤 많다는걸 알고 있었기에...그런데도 본인은 모르느지 모른척 하는건지.

다음으론 셋째가 준비하고 있었다. 이름은 '선이'였다. 별명은 철딱써니가 엄청 없어서 '써니'로 불리고 있었다. 외모는 멀리서보면 귀여워 보였다. 체격은 아담하면서 통통하였고, 얼굴은 둥근형이었는데 역시나 형제 아니랄까봐 이마와 미간은 좁고, 볼은 사탕을 문 듯 볼룩 튀어나와 있었다. 둘째가 말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이 끝나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변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는데...당연히 제가 유산 대부분을 받아야 하는거 아니에요? 다들 나 몰라라 도시로 분가해 나갔어도 저만큼은 모든걸 포기하고 부모님을 모셨다구요. 그리고 저 역시 유산 환원엔 절대 반대해요" 그러면서 훌쩍대는게 아닌가! 친척들은 속이 답답해졌다. 셋째는 부모를 모시고 산게 아니라...능력도 안되는데 사고부터 쳐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데리고 살고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결혼 후에도 생계를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주구장창 무직으로 부모에게 손만 벌리고 사는 것도 꼴보기 싫은데...무슨 씀씀이는 그리도 흥청망청인지...명품 아니면 취급도 안하니. 참 나.

세명의 변이 끝나고 나니 친척들은 엄청난 피로감에 직면했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했는데...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셋의 욕심에 각개격파로 설득을 시작했다. 첫째 '다중'은 이쪽에 가서는 윽박지르다가 저쪽에서는 눈물로 하소연하는데...정말 가관이었다. 둘째 '전가'는 오른쪽에 가서는 첫째 욕하다가 왼쪽에선 동생 욕을 하는데...말문이 막혔다. 셋째 '선이'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떼를 쓰고 우기고...스트레스만 쌓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대로는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판단이 서서...친척들은 자리를 옮겨 결론을 내려서 결과를 발표하기로 하고 한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다. 모처로 옮겨서 심사숙고를 마친 친척들은 다시 셋을 불어들였다.
"결론을 내렸네. 우선 고인들의 뜻을 따라 절반은 사회의 환원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어. 특히 이건 너희들이 이미 뜻을 받들기로 했던 사항인데, 지금와서 이러면 안되지. 동의서류 다 봤다." 무슨 말인가? 셋은 부모에게서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으면서 이미 동의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공증까지 마친. 역시 뒷간 갈때 다르고 돌아올때 다르다더니. 계속해서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유산은 법에서 정한대로 나누기로 했다. 누구에게 더 주고 덜 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만약 불복한다면 그 사람의 몫을 깍아서 나머지에게 나누어줄거야. 불만있는 사람있니?""마지막으로 바램이 있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좋은 뜻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잘 이어받아 살 길 바란다."
셋은 불만이 있었지만...괜히 손해볼까봐 그자리에서 동의를 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명절이 되어도 그 어떤 친척에게도 세명의 주카들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떠난 부부 1주기 즈음해서 가까웠던 친척 몇명이 옛집을 찾아갔다. 예전에는 잘 관리된 정원이 있던 집이었는데...오랜시간 관리가 안되었는지 잡초가 무성한채로 있었다. 놀라서 세명의 조카에게 연락을 하니...첫째 '다중'이는 낮술했는지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끊는게 아닌가. 역시 가관이다. 속이 상했지만 둘째에게 연락을 하니, 둘째 '전가'는 전화번호를 오래전에 바꿨는지 다른 사람이 받는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마지막으로 혹시 해서 셋째 '선이'에게 연락하니 신호가 몇번 가더니 이내 배터리를 뺐는지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혈압이 급상승했다. 답답하고 황당하고 기가 막힌 상황에...할말을 잃었다.
이웃을 찾아 알아보니 장례가 끝나고나자마자 자녀들이 외지인에게 집을 헐값에 넘긴 이후로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걸 참는다고 참는데...몇명은 혈압이 너무 올라서 병원 신세를 지고서야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그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부모에게서 받을게 있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효부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부모에게서 다 받고나서는 나몰라라하는 세태. 슬프고 아프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많아진다는게...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사는 길이 어디인지 모두가 머리 맞대고 고민을 그리고 실천을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해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지금을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소한의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답답하고 속쓰린 경험을 4년마다 되풀이해서 하는것 같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는 경험을......참 흠......명치 끝이 아파온다.

어떻게 하면 '다중', '전가' 그리고 '선이'가 제대로 제 몫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정말 보고 싶은데.